신림동안씨의 ludo ergo sum 신림동안씨의 ludo ergo sum
북한군 포로 한국 소환의 진짜 문제: 전쟁포로는 프로파간다의 수단이 아니다

북한군 포로 한국 소환의 진짜 문제: 전쟁포로는 프로파간다의 수단이 아니다

1. 서론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전황이 장기화 되면서 러시아는 북한에 병력 지원을 요청했고, 2024년 하반기부터 북한은 쿠르스크 전선에 수천 명 규모의 병력을 파병했다. 이는 북한이 유엔 회원국으로서 타국의 침략전쟁에 직접 전투 병력을 파견한 전례 없는 사건이었다. 2025년 1월, 우크라이나군은 쿠르스크 지역에서 북한군 병사 2명을 생포했고,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들의 심문 영상과 얼굴을 전 세계에 공개했다. 이는 러시아가 그간 부인해 온 북한군의 참전 사실을 입증하는 결정적 증거로 기능했다. 이후 두 포로는 북한이 아닌 대한민국으로 가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고, 한국 정부는 헌법상 이들을 자국민으로 간주해 전원 수용 원칙을 천명했다. 약 1년 8개월에 걸친 우크라이나·한국·국제사회 간의 협의 끝에, 2026년 9월 두 포로는 마침내 한국 땅을 밟았다. 이 과정이 매듭지어지는 과정에서 세 가지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① 포로를 억류국(우크라이나)이 아닌 제3국(한국)으로 이전하
김지용은 친윤검사가 아니라는 청와대의 개소리: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 없어도 친일파는 친일파다

김지용은 친윤검사가 아니라는 청와대의 개소리: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 없어도 친일파는 친일파다

오늘 청와대 성기홍 홍보소통수석은 “김 후보자가 소위 친윤 검사라는 주장은 전혀 맞지 않는 주장”이라고 선언했다. 이 선언이 갖는 의미는 상당히 크다. 첫째, '친윤 검사'라는 개념을 이재명 일당이 원하는 방식으로 규정한다는 선언이었다. 둘째, 그와 같은 선언이 갖는 정치적 함의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으면서도, 인식론적 전도를 위한 프로파간다로 과감히 나아갔다는 것이다. 우선은 성기홍의 프로파간다를 분석해보자. ① 김지용은 2020년 8월11일 추미애 법무부 장관 재직 당시 검찰개혁의 적임자로 판단돼 검사장으로 승진했다, ② 2021년 6월11일에는 대검 형사부장으로 부임해 윤석열의 장모 최은순에 대한 불기소 처분 과정에 판단 누락과 수사 미진 사실을 확인하고, 그해 7월1일 수사를 다시 하라는 재기수사 명령을 내린 바 있다. ③윤석열 전 대통령 징계 청구 재고 성명에 동참하고, 정진웅 부장검사 독직폭행 건을 기소했으며, 김학의 전 차관 사건 기소에 관여했다 등의 주장 역시 모두 사실과 다르다. 청와
예측 부호화 이론 Predictive Coding Theory

예측 부호화 이론 Predictive Coding Theory

예측 부호화 이론은 “뇌가 외부 세계의 정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다음에 들어올 감각 정보를 예측하고 실제 입력과 예측의 차이인 예측오차 prediction error를 이용해 자신의 내부 모델을 수정한다”는 이론이다. 그 핵심 개념을 3가지 키워드로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하향식 예측 Top-down Prediction 뇌의 상위 계층은 과거의 경험과 문맥을 바탕으로 "지금 어떤 감각 입력이 들어올 것이다"라는 예측 Internal Model을 끊임없이 만들어 하위 계층으로 내려보낸다. ② 예측 오차 Prediction Error 눈이나 귀 같은 감각 기관을 통해 들어온 실제 입력과 상위 계층의 예측을 비교한다. 이때 발생하는 둘 사이의 차이를 '예측 오차'라고 한다. ③ 오차 최소화 Error Minimization 뇌는 상향식 Bottom-up으로 이 예측 오차 신호만을 상위 계층으로 전달한다. 뇌의 목적은 이 예측 오차를 0에 가깝게 줄이는 것이며, 이를 위해
보수의 뇌: 보수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보수의 뇌: 보수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1. 보수적 사고는 어디서 시작되나? 가. 인간은 변화를 싫어한다 우리는 변화를 피할 수 없음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변화에 소극적이다. 생활방식을 바꾸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지금은 그냥 이렇게 살고 싶어 한다. 불확실한 세상에서 우리는 이제까지의 습관을 굳건히 붙든 채 안정을 찾는다. 가라앉는 배에서 아직 물 밖으로 나와 있는 널빤지에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사람들처럼, 습관을 부여잡고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 슈테판 클라인, 『뇌는 어떻게 변화를 거부하는가』, 유영미 옮김, 서울: 어크로스, 2026년, 18쪽. Stefan Klein, Aufbruch: Warum Veränderung so schwer fällt und wie sie gelingt, S. Fischer Verlage, 2025. 과학 저술가 슈테판 클라인은 “우리에겐 변화에 대한 피로감도 있고, 손해 보기 싫은 마음도 있으며, 지금 가진 것을 잃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아예 “사람들은 변화를 원하지 않는

"왜, 그거 있잖아~"를 오랜만에 찾아냈다

쇠비름이었다. 그 이름이 좀체 기억나지 않아 지난 1년이 괴로웠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펼쳐 본 책 한 권이 도움이 됐다. 이나가키 히데히로 稲垣栄洋의 책, 『방구석 식물학 (원제 雑草の生きざま)』의 책장을 설렁설렁 넘기다가 딱 발견한 거다. 설단현상 Tip-of-the-tongue phenomenon으로 답답해하다가, 기어이 이름을 떠올렸을 때만큼이나 속시원했다. 방구석 식물학 이나가키 히데히로2026사람과나무사이 블로그 글 더보기 친구 녀석 하나가 이태 전부터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농부학교며 비닐하우스 실습이며를 하더니, 어느날 갑자기 밭 500평을 경작하게 됐다고 했다. 처음으로 자기 밭을 경작하기 시작하자 친구의 연락이 잦아졌다. 원래 하는 일이 있다 보니, 주말에나 겨우 밭을 살피고 있던 건데, 제대로 된 농사라고 하기 어려워 보였다. 처음에는 농사란 게 그런 식으로 지을 수 있는 게 아니란 지청구를 늘어놓다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잔소리란 생각이 들었다. 적극적
도덕적 과시 Moral Grandstanding

도덕적 과시 Moral Grandstanding

도덕적 과시 moral grandstanding는 최근의 정치적·사회적 논쟁을 이해하는 데 매우 유용한 개념이다. 특히 소셜미디어가 공론장의 중요한 공간이 되면서 사람들은 자신의 정치적 견해나 도덕적 판단을 단순히 문제에 대한 의견으로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얼마나 도덕적으로 훌륭한 사람인가를 보여주는 수단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이 현상을 철학적으로 분석한 대표적인 연구자가 저스틴 토시 Justin Tosi와 브랜든 웜키 Brandon Warmke이다. 이들은 2016년 「Moral Grandstanding」에서 개념의 기본적인 구조를 제시하고, 이후 「Moral Grandstanding as a Threat to Free Expression」에서 이것이 공론장과 표현의 자유에 어떤 문제를 일으키는지를 분석하였다. 1. 도덕적 과시란 무엇인가? Our basic contention is that one grandstands when one makes a contribution to public
그런 관례는 없다: 용혜인 사태로 살펴본 마녀사냥의 프로파간다

그런 관례는 없다: 용혜인 사태로 살펴본 마녀사냥의 프로파간다

오늘 오전 용혜인은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를 ‘자진사퇴’ 당했다. 이재명과 민주당이 ‘유체이탈 화법’을 통해, 모든 책임을 용혜인에게 떠넘기는 역겨운 짓거리를 또 하고 말았다. 이 새끼들도 윤석열과 ‘내란의힘’에 못지않은 쓰레기임을 스스로 증명한 것이다. 진짜 개노답이다. 용혜인 사태의 핵심은 ‘존재한 적 없는 관례’를 무기로, 용혜인을 공격한 전형적인 비형식적 오류인 ‘허수아비 때리기 오류 straw man fallacy’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 글은 “비례대표 의원이 국무위원에 지명되면 의원직을 사퇴하는 게 관례”라는 거짓말과 그 관례의 저열함을 드러내고자 한다. 1. 관례란 무엇인가? 관례慣例 전부터 해 내려오던 전례(前例)가 관습으로 굳어진 것. ≒장고.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의 뜻풀이 관례 convention는 관습 custom과는 제법 차이가 있는 개념으로, 크게 철학적 개념과 법률적 개념으로 나눠서 살펴볼 수 있다. 법률적 개념에서 convention은 ‘협약’으로 주로 번역되며, 법적
원칙도 없고, 쇄신도 없는 이재명 정권의 개각: 용혜인을 제물로 삼은 혐오스러운 굿판

원칙도 없고, 쇄신도 없는 이재명 정권의 개각: 용혜인을 제물로 삼은 혐오스러운 굿판

이재명 정권은 2026년 8월 30일 6개 부처 개각과 청와대 참모진 교체를 발표했다. 그 무엇 하나 쇄신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쯤하면 한숨을 내쉬는 수준을 벗어나 이가 갈리게 된다. 이는 성남시와 경기도 그리고 민주당에서 '인사의 무기화'를 통해 얻은 성공의 경험에 기반한 '자기 성공의 우상화 idolization of an ephemeral self'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국정 운영에선 그 성공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1. 황당한 이재명 정권의 인사 가. 대통령경호처 개혁을 식언하다. 윤석열의 사병처럼 작동했던 대통령경호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 작고 폐쇄적인 조직을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해결 방법은 대체로 하나로 귀결됐는데, 대통령경호처 해체하고 경찰로 일원화하는 것이었다. 현재 대통령 경호 업무는 경호처, 경찰, 육군이 동원되고 있다. 다만 육군의 경우는 군사적 위협에 대응하는 수준일 때에만 필요한 터라, 일상적인 경호 업무와는 사뭇 거리가 있다. 따라서 「
이재명, 『굿바이, 범죄꾼』과 사법리스크 사이

이재명, 『굿바이, 범죄꾼』과 사법리스크 사이

이재명은 호불호가 극단적으로 갈리는 정치인이다. 자초한 면도 있어서 마냥 억울해할 수만은 없다. 이재명, 악마화와 자화상 사이 중도 없는 호불호 ‘유능·열정·수난’ 대 ‘구설·냉혹·의혹’, 이재명의 이중적 이미지… 정치 양극화 영향도 커 h21.hani.co.kr 대체로 이재명의 비호감도는 전과와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고소 남발에 이은 사법리스크 그리고 사생활에 대한 악마화에 근거한다. 2017년 한국 갤럽에서 정치인들에 대한 호감과 비호감을 조사한 이래로, 부동의 1위를 차지한 것은 이준석이지만, 이재명의 비호감도 꽤나 높은 편이다. 이는 한국 정치 지형 내에 '비토 Veto 정서'가 강해졌기 때문으로, 내가 지지하는 후보가 아니면 무조건 비호감으로 응답하는 정치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유력 정치인들은 기본적으로 50% 이상의 비호감도를 안고 가는 것이 정례화됐다. 윤석열의 쿠데타와 탄핵 이후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이재명은 49.42%로 과반 득표에 실패했을 정도다. 직전 선거에서 47.83% 득표에
소박 실재론 Naïve realism

소박 실재론 Naïve realism

소박실재론Naïve realism은 철학과 사회심리학에서 같은 이름을 쓰지만 서로 다른 문제를 다루는 개념이다. 철학에서는 주로 “우리가 지각하는 세계가 정말 지각 그대로 존재하는가?”라는 인식론적 문제를 가리키고, 사회심리학에서는 “나는 현실을 객관적으로 보고 있으며, 나와 다르게 보는 사람은 편향되어 있다”는 인간의 인지적 경향을 가리킨다. 1. 철학에서의 소박실재론 철학에서 소박실재론은 외부 세계가 우리의 지각과 독립적으로 실제로 존재하며, 우리가 감각을 통해 그 세계를 대체로 있는 그대로 직접 지각한다고 보는 입장이다. 예를 들어 책상 위에 빨간 사과가 있다고 하자. 소박실재론에 따르면 우리가 보는 것은 단순히 ‘사과의 이미지’나 ‘의식 속에 만들어진 표상’이 아니라, 실제 외부 세계에 존재하는 빨간 사과 자체이다. 사과는 내가 보지 않아도 존재하며, 내가 보는 사과의 붉음과 둥근 형태 역시 세계에 있는 사과의 속성을 어느 정도 직접적으로 반영한다. 이 입장은 회의론이나 관념론, 그리고 일부
대한축구협회의 개혁은 불가능에 가깝다

대한축구협회의 개혁은 불가능에 가깝다

1. 왕의 머리를 자른다고 왕정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미셸 푸코에 따르면, 정치이론은 오랫동안 권력을 '누가 권력을 가지고 있는가'라는 관점에서만 이해해 왔다. 그러나 권력은 특정한 군주나 국가기관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곳곳의 관계와 제도, 담론 속에서 작동한다. 따라서 권력을 이해하려면 '왕'이라는 중심적 권력 주체에 집착하는 사고방식 자체를 버려야 한다. 마르크스의 언어로 환원한다면, 토대를 바꾸지 않는 한 상부구조는 존속한다고도 할 수 있을 테다. 혁명은 왕의 머리를 자르는 것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박정희 하나 죽였다고 해서 '서울의 봄'이 이어지 않았던 것처럼, 혁명은 독재자 하나를 처리하는 것으로 이루어지진 않는다. 독재자에게 최상의 시나리오는 엘리트 중 상당수가 독재자의 통치가 지속되어야 자신들에게도 이익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럴 경우 엘리트들은 독재자의 통치를 묵인하는 것은 물론이고 혼란스러운 시기에 버팀목 역할도 할 수 있다. 마르첼 디르주스, 『독재자는 어떻게 몰락
[리뷰] 데이비드 팩먼,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사람들』, 염종선 옮김, 초판, 경기도 파주: 창비, 2026.

[리뷰] 데이비드 팩먼,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사람들』, 염종선 옮김, 초판, 경기도 파주: 창비, 2026.

좌파를 위한 에코 체임버 David Pakman, The Echo Machine: How Right-Wing Extremism Created a Post-Truth America, Boston, MA: Beacon Press, 2025. 1. 머리말의 시건방은 결국 공수표가 됐다 19쪽 정치를 다루는 사회과학 서적들은 너무 쉽게 비관적인 어조를 취하곤 한다. 종종 사회적 문제들을 극복이 난망하고 불가피한 것으로 묘사하며 해결책 제시에는 지면을 거의 할애하지 않는다. 그나마 제시된 해격책들도 지나치게 복잡하고 방대한 탓에 현실성이 부족하고, 해결책마다 각각 책이 한 권씩 쓰여야 할 지경이다. 하지만 이 책은 다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이 책이라고 다르지 않다. 비관적인 상황을 비관적이지 않은 어조로 말한다고 해서, 비관적이지 않은 것이 되진 않는다. ‘내가 정치를 혐오하는 이유’란 머리글로 시작하는 책이니 오죽할까. 사회적 문제들은 대체로 극복이 난망하고 불가피하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걸린 문제라서
일베 몰이, 그리고 반동적인 일베적 담화

일베 몰이, 그리고 반동적인 일베적 담화

동에 팔봉산, 곡선은 왜 저리도 굴곡이 없이 단조로운고? 서를 보아도 벌판, 북을 보아도 벌판, 아, 이 벌판은 어쩌라고 이렇게 한 이 없이 늘어놓였을꼬? 어쩌자고 저렇게 똑같이 초록색 하나로 돼먹었노? 이상, 「권태」, 퍼블릭 도메인 나는 리센느를 별로 좋아하진 않는다. 2026년 4월 8일에 발매된 디지털 싱글 「Runaway」는 제법 마음에 들긴 하지만, 지금 찾아보고서야 취향에 부합하는 곡이었구나를 깨달았을 뿐이다. 최근 쇼츠에서 리센느의 원이와 미나미가 엄청 자주 보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이 아이들이 더 좋아지거나 하진 않는다. 그러니 원이의 '무섭노' 발언에 대해서는 1도 관심이 없었다. '이기 머꼬?'나 '머라 카노?'와 별 차이가 없는 발화 utterence이기 때문이다. 기대를 벗어난 의외의 상황에서는 언어적 하비투스 habitus에 의해 가장 친숙한 발화 형태를 취하게 되고, 그게 자연스럽게 튀어나왔을 뿐이기 때문이다. 앞서 인용한 이상의 단편소설 「권태」의 도입부에서처럼, 의문형
잘못 알고 있는 출처에 대한 과도한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잘못 알고 있는 출처에 대한 과도한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Love conquers all things.-Virgil'? 아, 진짜, 이건 초서가 한 말이잖아" 하는 식이었다. 스즈키 유이,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 이지수 옮김, 초판, 서울: 리프, 2025, 28쪽 스즈키 유이의 소설에 등장하는 한 문장이다. '가장 널리 알려진 출처를 곧 원출처로 간주하는 인지적 습관'이 드러낸다. 스즈키의 소설 속 인물인 히로바 노리카는 영문학을 전공하는 학생으로, 원전인 베르길리우스의 목가가 아니라 재인용인 제프리 초서의 앤솔로지로 기억한다. 아무래도 영문학사에 있어서 초서의 『켄터베리 이야기』가 가지는 의미가 크기 때문이겠다. 쌍팔년도에 이문세가 부른 노래 <붉은 노을>을 요즘 애들은 2008년에 리메이크한 BIGBANG이 원곡자인 줄 아는 것처럼 말이다. "Love conquers all things."는 오늘날 가장 널리 알려진 고전 라틴어 문구 가운데 하나로, 고대 로마 시인 푸블리우스 베르길리우스 마로 Publius Vergilius Maro의 『B
[리뷰] 스즈키 유이,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 이지수 옮김, 초판, 서울: 리프, 2025.

[리뷰] 스즈키 유이,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 이지수 옮김, 초판, 서울: 리프, 2025.

괴테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鈴木 結生, 『ゲーテはすべてを言った』, 朝日新聞出版, 2025. 1. 광화문 교보문고 글판_괴테는 그런 말을 한 적 없다. 부끄럽게도, 피에르 부르디외의 하비투스 habitus 개념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이 불과 몇 년 전이었다. 워낙 뻔한 말을 사회과학 차원에서 구조화한 것일 뿐이라서, 쉽게 설명해 주면 ‘당연한 이야기’라고 반문을 할 정도의 개념이긴 하지만, 이렇게 멋지게 포장된 개념을 나처럼 스노비즘에 절인 인간이 알지도 못했다는 사실에 꽤나 분했다. 프랑스 사람인 부르디외가 정리한 개념인지라 혹자들은 프랑스 발음으로 아비투스라고 표기해야 한다고 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라틴어 단어를 프랑스 발음으로 하는 병신력을 보일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나는 그냥 하비투스라고 표기하는 편이다. 이것도 꽤나 고민해 볼 문제긴 한데, 나중에 기회가 생길 테다. 여하튼, 부르디외의 정의에 따르면 “일정 방식의 행동과 인지, 감지와 판단의 성향체계로서 개인의 역사 속에서 개인
옛날 팝 샘플링하는 요즘 케이팝

옛날 팝 샘플링하는 요즘 케이팝

1. 음악 취향과 하비투스 오십줄에 들어섰으니, 빼도 박도 못하는 중년이고, 꼰대임을 부정하기 어렵다. 안타깝게도 나이를 먹으면 제법 보수적으로 변하게 되는데, 이거 어쩔 수 없다. 고령층이 지배적인 사회는 도전을 대하는 태도가 젊은 사회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 새로운 길을 가기보다는 익숙한 길을 고수하려는 경향이 강해지는 것이다. 슈테판 클라인, 『뇌는 어떻게 변화를 거부하는가』, 유영미 옮김, 서울: 어크로스, 2026년, 40쪽 Stefan Klein, Aufbruch: Warum Veränderung so schwer fällt und wie sie gelingt, S. Fischer Verlage, 2025. 독일의 과학자이자 문필가인 슈테판 클라인의 설명에 따르면, 인간에겐 "변화에 대한 피로감도 있고, 손해 보기 싫은 마음도 있으며, 지금 가진 것을 잃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다"고 하면서, "사람들은 변화를 원하지 않는다"고 강변한다. 우리 같은 꼰대들은 반 세기를 살아오면서 축적한
[리뷰] 와타나베 타카히로, 『도해 게임이론』, 기미정 옮김, 개정판, 서울: 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2025.

[리뷰] 와타나베 타카히로, 『도해 게임이론』, 기미정 옮김, 개정판, 서울: 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2025.

게임이론에 관한 서브노트 같은 책 渡辺隆裕, 『ゲーム理論』, 初版, 東京: ナツメ社, 2004. 도해 게임이론 와타나베 타카히로2025AK커뮤니케이션즈 블로그 글 더보기 1. 서브노트라는 콩글리시 서브노트라는 콩글리시를 처음 접한 것은 15년 전쯤이다. 이 의미불명 출처불명의 신조어는 아무래도 ‘sub’와 ‘note’로 형태소 분석이 가능할 듯하다. 문제는 영어의 파생어 조어 방식에서는 좀체 사용되지 않는 방식으로 단어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차라리 국어의 합성어 조어 방식에 따라, ‘서브’와 ‘노트’가 결합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 보니 옥스퍼드사전이나 케임브리지사전과 같은 영국 사전이나 미리엄-웹스터 사전과 같은 미국 사전에는 수록되지 않는다. 영어로는 study notes나 summary notes에 가까운 의미인 서브노트는 ‘자신의 수기로 이루어진 학습 요약 기록’이란 의미에서 시작했다. 하지만 시험교재 시장이 성장하면서, 서브노트라는 참고서의 종류가 생기기까지 했다. 주로 도표화나 도해를 곁
믿지 못할 기억과 가족의 배신

믿지 못할 기억과 가족의 배신

1. 유아기 기억상실증(Infantile amnesia 또는 childhood amnesia)은 성인이 생후 2~3년 동안의 자전적 사건을 기억하지 못하고, 3~7세 사이의 기억이 거의 없는 현상을 말한다. 이유는 다양하다. 신경학적 neurological으로는 ‘일화 기억 형성에 필수적인 해마와 전두엽 피질의 늦은 성숙’을 이유로 꼽는다. 인지 발달 cognitive development 차원에서는 ‘어린 아이들이 자전적 기억으로 사건을 부호화하는 데 필요한 인지적 틀(자아 개념, 서사 구조, 시간 이해)이 부족하다’고 설명한다. 언어학적 language 설명은 ‘2~3년 사이에 발달하는 언어적 부호화가 나중에 언어적 회상을 통해 불러올 수 있는 기억을 형성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아이들은 자신의 경험에 대한 서술적 설명을 구성하는 능력을 발달시키면서 지속적인 자전적 기억을 형성하기 시작하는데, 이 능력은 3~5세 사이에 부모와 자녀가 함께 과거를 회상하는 과정을 통해 나타난다는 것이다.
내 가족의 잊힌 불행

내 가족의 잊힌 불행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 레프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 1』, 연진희 옮김, 민음사, 2009. 13쪽. 불행의 비정형성에 대한 탁월한 묘사로 알려진, 『안나 카레니나』의 이 첫 문장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소설의 첫문장'인데,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이나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정도가 어깨를 나란히 한다. 행복이란 무엇인가를 철학적 개념으로 다루려면, 꽤나 골치가 아파질 테다. 그러니 살짝 맛만 보고 지나가자면, 행복이란 몇 가지 조건들의 만족으로 이루어지는 정신 상태 정도로 볼 수 있는데, 심리학에서는 ‘주관적 안녕감 Subjective Well-Being’이란 개념으로 설명한다. 여기서 조건 몇몇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실천적인 좋음들 가운데 최고선은 행복 eudaimonia이라고 부르며, 행복을 잘 사는 것 to eu zen이나 잘 나가는 것 to eu prattein과 같은 것으로 여긴다. 대중은
내 가족의 기원과 종말

내 가족의 기원과 종말

제779조(가족의 범위) ①다음의 자는 가족으로 한다. 1. 배우자, 직계혈족 및 형제자매 2. 직계혈족의 배우자, 배우자의 직계혈족 및 배우자의 형제자매 ②제1항제2호의 경우에는 생계를 같이 하는 경우에 한한다. 민법 [시행 2026. 3. 17.] [법률 제21454호, 2026. 3. 17., 일부개정]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된 '가족'이란 단어의 뜻풀이는 "주로 부부를 중심으로 한,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 또는 그 구성원. 혼인, 혈연, 입양 등으로 이루어진다"고 기술되어 있다. 같은 말로는 처노 妻孥가 있고 비슷한 말로는 식구가 있다. 식구는 "한집에서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이라 풀이한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면 친족이 존재한다. 민법 제777조에서 규정한 "8촌 이내의 혈족, 4촌 이내의 인척 그리고 배우자"로 확장된다. 굳이 민법 조문과 국어사전을 들먹이며 가족의 개념을 살펴본 이유는 벌 거 없다. 나처럼 나이 먹은 시골 사람은 친족에게까지 '가족'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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